"그것 봐요. 고 교수만 하더라도 어떻게 교수가 돼 가지고, 그런 꼴사나운 짓을 하겠느냐는 생각에 갇혀 있는 거예요. 나도 그래요. 내 동작을 누군가 훔쳐보았다면 나도 영락없는 미친 중 취급 받겠지만 여기 이 산거는 나만의 공간이에요. 그래서 이따금 즐기곤 하지요."
나는 결국 스님의 말씀에 감동 되어 차를 마시다 말고 한번 해보겠다고 일어섰다. 그리고 내가 가랑이 사이로 얼굴을 넣은 채 군대에서 했던 '대가리 박아'를 실시하자 내 자세가 어설펐던지 스님이 다가오셨다.'무릎을 똑바로 펴라, 다리를 더 벌려라, 양손으로 발목을 잡아라'등 세련된 가르침이 이미 숙련된 조교가 따로 없었다.
처음엔 몹시 어지러웠다. 그러나 가르쳐주신 대로 심호흡과 쉬엄쉬엄 몇 번을 거듭하다 보니..... 아, 어린 시절 경험과는 정말 전혀 다른 세계가 다가왔다.
에메랄드 산과 숲의 색채는 훨씬 더 선명하게 분해되고 있었고 하늘이 호수가 되자 나머지 대상들은 물 위에 뜬 그림자로 다가왔다.
검푸른 앞 산과 청 회색의 뒷산은 다도해多島海의 그림자로 착각이 들고, 물 안개와 물방울들마저 자연의 심연에서 개화開花하고 있었다.
점을 찍듯 들려오는 풍경 소리는 적막과 고요의 형체로 다가오고, 한 자락 대 숲의 바람까지 눈에 잡히는 듯 호수 밑을 지나가고 있었다.
주객의 분리, 결합과 해체, 강조와 생략, 소멸과 여운 등이 투명하게 분리되는 심지어 생물과 무생물까지 하나가 되는 만다라蔓陀羅의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아, 자연이 주는 신비함이 내가 그토록 추구해오던 불교의 이상향과 이렇게 닿아 있을 줄이야....., 내 그림의 모티브가 된 색채, 안개, 물방울. 바람, 그림자. 정적靜的들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스님은 고정 관념으로 보지 말고 새로운 열림으로 보라 하셨다. 일어섰다 구부렸다를 반복할 때마다 이 감동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상對象들의 시각적 이상향이 열려가고 있었다. 평생 양식의 또 다른 세계를 견인하게 된 것이다.
스님은 이미 가셨지만 그날 불일암에서 당신의 거꾸로 보기 가르침은 더 이상 나의 방황을 끝내게 만드셨다. 스님은 나에게 '불교미술 현대화, 불교디자인 개척화'에 대한 확신 뿐만 아니라 시각의 대상을 투명, 교요, 여림, 공간, 원근. 생략, 침묵 등 붓을 들어 표현하기 이전에 더욱 넓고 깊은 사유思惟의 뜰을 먼저 채집하게 만드셨다.
지금도 내 작품 속에는 스님의 눈빛이 화필 영감의 중심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