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祝祭.
말만 들어도 흥이 절로 난다.
우리 어렸을 땐 먹고 살기 바빴던 탓으로 축제라는 게 별로 없었다.
명절이나 보름 , 단오절등 전해 내려오는 민속색을 띤 몇몇 종류를 제외하고는….
그 당시 이웃 일본이나 서양의 축제소식이 들려오면 엄청 부러워 했던 기억이 난다.
헌데 오늘 날에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다.
특히 요즘 같은 봄이나 가을엔 지방마다 축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으니…
지자제가 도입되면서 지방마다 나름대로의 특색을 살린 축제가 열려 삶의 맛과 멋을 만끽할 수 있고 지자체 특산물등을 쉽게 접할 기회가 있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난 최근에 참외의 특산지로 널리 알려진 “성주 참외 축제”를 구경 가 보았다.
얼마 전까지 수박의 특산지로 알아 왔는데 참외 축제라니 ?
처음엔 좀 의아해 했으나 아무려면 어떻나 내가 이 곳 축제 마당을 찾은 것은 서예가 “청악.靑岳 이홍화.李弘和” 선생의 서예 퍼포먼스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촬영 겸 찾은 것이니..
오월의 둘째 날인 일요일은 아침부터 간간히 비가 흩날렸지만 축제가 열리는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초행길인지라 가던 길을 되돌아 가면서 찾은 성주 성문밖 축제장엔 이미 많은 인파들로 북적 거리고. 대형 스피커에선 신나는 트롯트 음악이 그 곳을 찾은 나의 어깨를 어깨를 들먹이고 있다.
참외의 상징물인 대형 마스코트와 참외를 소개하는 참외 아가씨들의 상냥한 미소 속에 드러나는 하얀 이는 참외 속살고 같아, 보는 이들의 군침(?)이 나돌게 한다.
축제의 개막 테이프 절단에 이어 서예 퍼포먼스가 시작 된다.
한 말 가량의 먹물 항아리,
30m가 족히 넘는 긴 한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들이나 쓸 것 같은 엄청 큰 붓( 이렇게 큰 붓을 처음 보았다).
어릴 때 보아왔던 누이가 입던 흰 옥양목 두루마리를 걸친 청악 선생이 흰 고무신을 신고 글씨 마당에 들어서니 주위는 사뭇 조용해지면서 모두들 청악 선생의 두 팔만 응시하고 있다.
항아리의 먹물에 넉넉히 적셔진 붓은 청악 선생의 두 손아귀에서 춤을 추듯 냅다 달리는가 싶더니 이내 [ 水 ] 자를 만들어 내곤 다시 { 色 ]자 이어서 [ 山 ] 자로 이어져 한 달음에 [ 水 色 山 光 引 興 長 ] 즉 “물빛 산빛으로 인하여 더욱 흥취가 나는 도다”라는 이 곳 축제의 흥취를 담은 뜻을 토해내니. 카메라 화인더로 들여다 본 이 광경은 무릇 단기.單騎로 적진을 뚫고 달려가 적장의 목을 베고 돌아 오는 명장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낙관.落 款.
글씨나 그림을 그린 후 아호나 이름을 찍는 도장이다.
쓰기를 다 마친 청악 선생이 바둑판만한 낙관을 두 손으로 꾸욱 눌러 찍는 것도 나의 상상을 초월케 한다
옆에선 4명의 명창들이 민요로 화답하고 장승 깍는 조각쟁이들은 가락에 맞추어 춤추듯 정을 때리니 이 또한 서예와 음악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흥취가 한껏 고조된 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서예는 그 본성이 조용한 걸로 알고 있다.
은은한 묵향에 취해 방안에서 조용히 화선지에 마음을 담아 자신을 수양하는 예술이며 도.道가 아닐까?.
헌데 청악 선생은 이 조용한 방안에서 넓은 들판으로 뛰쳐 나와 군중을 헤치고 필마로 평원을 달리듯 일필휘지로 마음을 펼쳐보이는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퍼포먼스를 행하고 있다.
잠시 후에 한 무리의 사진쟁이들이(나중에 알고 보니 어느 사진 동우회에서 출품할 작품을 찍으러 왔단다) 재현을 요청한다.
시간이 늦어 미쳐 방금 전에 끝난 퍼포먼스를 못 찍은 것을 아쉬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에 청악 선생이 쾌히 승락하고 다시 쓰기 시작한다.
카메라맨들이 청악 선생의 일거수 일투족을 응시하며 화인더를 들여다 보고 있는 동안 나는 2층으로 올라가 내려다보니 수평에서의 앵글보다 더 장엄한 광경이 내 눈을 화인더에서 떼지 못하게 한다.
정문 쪽으로부터 풍장꾼(충청도에선 농악대를 풍장꾼으로 칭한다)들의 풍악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이내 이 쪽으로 다가와 징과 꽹과리를 더 요란스레 쳐대고 상모꾼들의 풀무가 신나게 돌아가고 있다.
월드 컵 때 공연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 우리말로 날뫼라고 불리는 대구의 [비산.飛山농악 패]들이다.
대구의 날뫼지역에서 정월 대보름 때 천왕굿을 하면서 지신놀이등에서 행해졌던 이 농악은 400년전부터 이어오다가 상쇠 최봉수를 중심으로 편성된 것은 6.25이후이며. 지금은 49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구 무형 문화재 2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난 잠시 카메라 렌즈를 풍장꾼들에게 향하여 몇 컷을 담아내고는 장승 조각장으로 향했다.
장터국밥으로 점심을 떼우곤 농사 체험장에서 유년시절에 집에서 썼던 탈곡기에 발을 얹어 돌려본다.
원통에 뾰족한 꺽쇠를 둘러 박아 돌아가면서 나락을 훑어 내리는 탈곡기.
그 시절 우리들은 [와롱기]라고 했다.
돌아가면서 내는 소리가 어린 우리들 귀에 “와롱와롱”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옆에 있는 콩깍지등을 바숴내는 “도리깨”로 도리깨질을 해 보니 돌리는 균형이 안 맞아서인지 땅에 닿을 때 마다 손잡이가 비틀거린다. 나의 서투른 행동을 보고 있던 나이가 지긋하신 한 분이“도리깨질은 이렇게 하는 거래이”하면서 제법 숙달된 조교마냥 시범을 보인다.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참외 시식회장에서 먹어본 참외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20개들이 한 상자에 6만원 이라는 가격이 부담이 되지만 그토록 품질 좋은 참외를 개발 재배 하기까지 농민들의 노고를 생각해보면 당연하리라 생각된다.
각종 양질의 참외를 전시하는 전시장엔 달콤한 참외 냄새와 참외 아가씨들의 상냥한 미소가 관람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도자기 제작 체험장,떡메치기, 참외로 만든 음식, 참외 따기 체험장등 많은 볼거리가 있었으나 시간이 허락치 않아 “들꽃 전시회”장에서 들꽃의 청초함을 보고 옆의 “다도 체험장”에서 [말차(가루차의 일본이름)]를 한 잔 마시니 녹차의 향이 온 몸으로 전이 되어 피로가 풀린다.
내가 말차에 입이 길들여진 것은 작년 5월에 구미시에서 개최된 [구미 차.茶의 날]에 일본 오쯔시에서 출품한 오즈시 다도회 통역을 맡으면서 말차를 접하게 되었고, 그 후 구미.해평에 있는 보천사에 가끔 들러 [보천사]의 지민 스님에게서 얻어 마시면서 부터 시작됐다..
돌아오는 길에 청악 선생 일행과 찻집에서 마신 차 맛과 비교하니 말차의 맛이야 차중의 일품이 아닌가 한다.
축제장에 가끔 가보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값이 좀더 싸면 많은 사람들이 구매 할 텐데”라는 것과 안내의 서투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곳 성주 참외 축제장은 그런 면에선 대채로 잘 집행된 것 같다.
오월의 하늘은 돌아오는 길에 비를 뿌려주고 있지만 축제장을 갔다 오면서 난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음에 주최측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