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반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올라가기 전에 공양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양주를 두고 살 만한 처지의 암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다는 스님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암자에 올라가자 스님은 어머니가 와 계신 다고 말했습니다. 암자의 공양주는 스님의 노모였던 것입니다.
스님이 노모를 모시게 된 사연은 간단했습니다. 노모께서 죽기 전에 스님과 한번 살고 싶다는 그 청을 거절하지 못해서였습니다.
올해 여든셋의 노모는 건강해 보였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여이"하는 노모의 음성이 정다웠습니다. 스님과 담소를 잠깐 하는 동안 노모는 멋진 비빔 밥상을 차려 놓고 우리를 불렀습니다. 온갖 산 야체로 차려진 밥상은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민들레 고수 머위 취나물 방아 가루 등등 족히 열 가지는 되어 보이는 야채들이 색색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밥은 조금 야채는 듬뿍 넣고 고추장을 넣어 비비는 사이 노모는 참 멋진 말씀을 던지셨습니다. "천지가 반찬이여." 그 말을 듣는 순간 천지가 '어디서나' 라는 의미보다는 하늘과 땅의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모의 지나가는 말에 나는 대거리를 했습니다. "하늘과 땅을 반찬 삼아 먹었으니 난 대장부로 다시 태어났스라이."
노모는 비빔밥이 매운지 식사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노모의 매운 밥은 덜어 자신의 밥 그릇에 담고 노모의 밥 그릇에는 맨밥을 넣어 주며 잇몸이 물러져 매운 것을 돗 드신다고 말했습니다. "늙어서 그라요." 노모의 말끝에 스님은 다시 말했습니다."그 몸 팔십 년 이상 썼으니 늙는 것이 당연하고 늙었으니 물러지는 것 역시 당연하지요. 늙어도 안 늙고 지나치게 젊어 보이면 나는 오히려 그것이 징그럽데." 노모와 아들스님의 대화는 고추장 이상의 맛깔스러운 밥상의 양념이었습니다.
산속의 인적 드문 작은 암자. 부처님도 노모와 아들 스님의 저런 대화를 들으시면 심심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햇살 따뜻한 봄 날 산길을 내려오며 나는 다시 노모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천지가 반찬이여."
